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이 돌기 전 이상한 자연현상이나 기이한 사건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고, 하늘의 경고이자 재앙의 징조로 여겼다. 실록에는 흉한 소리, 정체불명의 새, 붉은 비, 땅의 갈라짐 등 기이한 현상이 먼저 등장하고 나서 곧 역병이 퍼졌다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전염병 유행 이전에 실제로 보고되었던 괴현상과 징조들을 소개한다.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왕과 신하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국가 문서' 안에 남아 있는 실화이기에, 오늘날의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놀라운 시사점을 던진다.
1. 붉은 비가 내린 후, 온 마을에 열병이 퍼지다
📜 세조실록 5년(1459년) 2월 기록
“경상도 일대에 붉은색 빗물이 내렸고, 비를 맞은 사람들 중 열병에 시달리는 자가 속출하였다.”
실록에 따르면 붉은 비가 내려 들판이 핏빛으로 변했고, 이를 목격한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했다. 그 직후 해당 지역에서 고열과 발진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급증했고, 일부는 생명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황사와 광물먼지에 의한 적우(赤雨)로 추정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직후 전염병이 번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2. 동시에 울어버린 개와 닭, 그리고 괴질 발생
📜 중종실록 28년(1533년) 7월 기록
“밤사이 온 동네의 개와 닭이 동시에 울어대어 백성이 놀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기침과 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 기록은 아주 특이한 사례다. 개와 닭이 동시에 울어댔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재앙의 징조로 여겨졌고 ‘사령(死靈)의 접근’이라고도 불렸다.
실제로 이 사건이 있은 후, 한 달 동안 인근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괴질이 퍼졌고, 당시의 명의들도 원인을 알 수 없어 한약과 부적에 의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3. 하늘에서 들린 괴성(怪聲), 그 뒤 찾아온 전염병
📜 숙종실록 24년(1698년) 9월 기록
“북쪽 하늘에서 큰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고, 개와 말이 동시에 짖고 날뛰었다. 그 달 안으로 마마(천연두)가 유행했다.”
조선 후기 천연두는 어린아이를 중심으로 퍼져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괴성은 실제로 사람의 울음과 같은 소리였으며, 하늘에서 울렸다 하여 ‘천음(天音)’이라 불렀다.
당시 의관들은 감염병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정하며 기록에 남겼고, 왕도 그 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4. 뱀이 대낮에 떼로 출현한 뒤 퍼진 역병
📜 영조실록 20년(1744년) 4월 기록
“경기도 남부 지역에 뱀이 무리지어 마을 앞 논에 몰려들었고, 주민들은 재앙을 예감했다. 이후 마을에서 설사와 구토로 죽는 자가 많았다.”
실록은 뱀의 출현을 두고 ‘음한(陰寒)의 기운이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라 표현했다. 이후 발생한 전염병은 수인성 질병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뱀이 인간이 지은 죄를 경고하러 온 존재라고 믿었고, 전염병과의 연결고리를 직감적으로 인식했다.
5. 괴이한 빛이 땅에 내려앉은 밤, 괴질의 시작
📜 정조실록 15년(1791년) 8월 기록
“하늘에서 촛불만 한 크기의 불덩이 여러 개가 땅에 떨어지고, 다음 날부터 마을에 병이 퍼졌다.”
이 사건은 오늘날로 치면 유성 또는 대기 중의 발광 현상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하늘에서 재앙이 내려온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이 불덩이가 떨어졌다는 지역의 지도층 인물들이 병을 앓기 시작하며, 민심이 동요했고 결국 왕이 직접 의관을 파견해 ‘조사와 제사’를 명령했다.
6. 초여름에 눈이 내린 뒤 발생한 ‘여름 감기’ 유행
📜 헌종실록 10년(1844년) 5월 기록
“5월 말, 북부 지역에 눈이 내렸고, 며칠 뒤 주민들의 기침과 열 증상이 확산되었다.”
기후 이상현상은 전염병 발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인식되었다. 당시에는 온도 변화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부족했기에, ‘기후가 잘못되면 병이 온다’는 신념이 강했다.
여름에 내린 눈은 백성들에게 공포였고, 그 직후 발생한 대규모 호흡기 질환은 ‘역병의 시작’으로 기록됐다.

결론
조선시대 사람들은 단순히 과학적 설명을 통해 전염병을 이해하지 않았다. 자연의 변화, 이상한 울음소리, 정체불명의 빛, 동물의 비정상적 행동 등 모든 것이 하나의 ‘징조’로 해석되었다.
이는 곧 하늘과 인간의 연결, 그리고 조화롭지 못한 세상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으며, 실록 속에 그대로 기록되었다.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엔 미신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깊은 관찰과 감각이 있었다.
조선의 전염병은 단지 질병이 아니라, 시대 전체를 뒤흔든 사회적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항상, 이상한 징조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